3일치 식량, 왜 준비하라고 할까? 비상식량부터 생존배낭까지

영국의 72시간 대비 권고를 우리 집에 대입해 읽다…물·식품·냉장고·화장실·연락과 대피의 연결

영국은 10월 22일 필수 서비스 중단에 대비하는 캠페인을 발표하며 사흘치 물과 식품 준비를 권했다. 72시간은 복구가 보장되는 시각이 아니다. 국가별 물 기준의 차이, 조리 없이 먹을 식품, 정전 때 냉장고와 화장실 문제, 가정 비축과 대피가방의 구분을 통해 우리 집의 준비를 점검한다.

생수와 통조림, 크래커, 손전등, 라디오, 구급가방이 놓인 비상용품 사진
물과 식품, 조명·정보 수신 도구 등을 모아놓은 비상용품 자료사진. 가족의 필요에 따라 준비 항목은 달라진다. · 출처: Roger Brown / American Red Cross 게재. 원문에 Public domain으로 표기.
이 글의 목차
  1. 왜 지금 ‘3일치 식량’인가: 불안의 신호를 읽기 전에
  2. 72시간은 구조가 도착하는 마감 시각이 아니다
  3. 정전이 시작되면 냉장고·수도·결제가 함께 문제가 될 수 있다
  4. 물은 몇 병일까: 같은 ‘하루 3L’도 기준이 다르다
  5. 라면 몇 봉지가 아니라, 실제로 먹을 수 있는 끼니를 센다
  6. 정전 냉장고: 4시간·24시간·48시간의 조건을 같이 읽는다
  7. 물 다음으로 놓치기 쉬운 것, 화장실과 위생
  8. 집에 둘 물건과 들고 나갈 생존배낭은 다르게 준비한다
  9. 같은 4인 가족이어도 필요한 준비는 같지 않다
  10. 휴대전화가 안 될 때, 어디서 만나고 어디로 갈 것인가
  11. 오늘은 15분, ‘없는 물건’보다 ‘안 되는 일’부터 찾아본다
  12. 참고자료와 원문

3일치 식량을 준비하라는 해외 소식을 보면 거대한 재난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우리 집에 대입해볼 첫 질문은 더 작고 구체적이다. 오늘 저녁부터 전기와 수돗물이 끊기고 배달 주문과 카드 결제까지 어려워진다면, 지금 있는 물건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쌀은 있지만 밥솥을 쓸 수 없고, 라면은 있지만 물을 끓일 수 없다면 식품의 양과 먹을 수 있는 끼니의 수는 달라진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남아 있어도 통신이 불안정하면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가 도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가능한 상황을 가정한 예시이며, 특정 지역에 재난이 임박했다는 뜻은 아니다.

영국 정부는 10월 22일 생활 기반 서비스의 일시적 중단에 대비하는 ‘Be Ready’ 캠페인을 발표했다. 사흘치 물과 보관 가능한 식품을 준비하자는 권고가 포함됐다. 이 권고를 이해하려면 ‘무엇을 사야 하나’와 함께 ‘어떤 기능이 멈추면 무엇이 어려워지나’를 살펴봐야 한다. [1]

왜 지금 ‘3일치 식량’인가: 불안의 신호를 읽기 전에

영국 내각부는 지난겨울의 폭풍과 올여름의 산불 등을 사례로 들며, 전기·수도·전화·인터넷이 평소처럼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대비하자고 설명했다. 이번 안내는 3년에 걸친 캠페인의 시작 단계다. 재난을 예언하는 발표로 읽기보다 생활의 필수 서비스가 중단될 때 가정과 지역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한 정책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1]

국가별로 같은 숫자를 쓰더라도 맥락은 다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5년 발표한 대비태세 전략에서 주민이 최소 72시간 자립할 수 있게 하는 지침 개발을 제시했다. 이 전략은 조기경보, 필수 서비스, 공공·민간 협력과 위기 대응 체계를 함께 다룬다. 개인에게 식량을 사두라고 권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계획이 아니다. [3]

일본 농림수산성은 가정에서 최소 사흘, 가능하면 일주일 정도의 식품을 갖추도록 안내해 왔다. 일본의 기존 비축 지침을 이번 주에 갑자기 생긴 새로운 조치처럼 소개하면 시점을 오해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영국의 최근 발표와 EU·일본의 기존 대비 원칙을 구분해 살핀다. [4]

72시간은 구조가 도착하는 마감 시각이 아니다

영국 정부의 의회 서면 성명은 가정이 일정 기간 스스로 생활할 준비를 갖추면 응급 대응 기관이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흘은 이런 초기 대응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준비 단위다. ‘그동안 정부가 돕지 않는다’거나 ‘사흘이 지나면 반드시 복구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2]

이를 이해하려면 두 가정을 비교해보면 된다. 한 집은 당장 마실 물이 없어 지원을 요청해야 하고, 다른 집은 물과 간단한 식사가 있어 이웃의 안부부터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정전을 겪어도 필요한 지원의 시급성이 달라진다. 가정 비축의 가치는 개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제한된 지원이 먼저 필요한 곳에 갈 시간을 만드는 데 있다.

실제로 일본 농림수산성은 동일본대지진 당시 충분한 식량 조달이 재난 발생 사흘 이후에 가능했던 지역, 전기 복구에 일주일 이상·수도 복구에 열흘 이상 걸린 지역이 있었다고 안내한다. 사흘을 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근거다. 거주지의 위험과 가족의 필요에 따라 준비량을 더 늘릴 수 있다. [4]

따라서 72시간은 모든 재난에 통하는 안전 보증 기간이 아니다. 집이 위험해졌거나 대피 지시가 내려졌다면 비축품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비축량은 생활을 버티는 계획이고, 대피 여부는 당시 위험과 공식 안내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정전이 시작되면 냉장고·수도·결제가 함께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전은 불이 꺼지는 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냉장고는 식품을 차갑게 유지하지 못하고, 전기식 조리기구와 냉난방기기도 영향을 받는다. CDC는 정전 때 식품·수질·온도·전기 위험을 함께 확인하도록 안내한다. 건물과 지역 설비에 따라 영향의 범위는 달라진다. [14]

멈출 수 있는 기능

가정에서 생기는 질문

미리 나눠 생각할 준비

냉장·전기 조리

차갑게 보관하거나 가열해야만 먹을 수 있는가

보관 가능한 식품 중 바로 먹을 수 있는 것 확보

수도·급수

마실 물과 손 씻을 물을 따로 계산했는가

음용수 우선 확보, 조리·위생 용도 추가 검토

통신·정보

연락이 안 되면 누구와 어디서 만나는가

종이 연락처, 만날 장소, 배터리 라디오

전자결제

카드나 ATM을 이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가구의 필수 지출에 맞춘 소액 현금

조명·난방

어둡고 추운 집에서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가

손전등·건전지·담요, 이동 도움이 필요한 사람 확인

영국 Be Ready와 CDC 안내를 바탕으로 구성한 점검표. 모든 기능이 동시에 중단된다는 예측은 아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품 하나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아는 것이다. 보조배터리는 휴대전화 전원을 보충하지만 통신망 자체를 복구하지는 않는다. 현금은 일부 결제 장애에 도움이 되지만 문을 닫은 가게를 열게 하지는 못한다. 한 가지 준비에 모든 상황을 맡기기보다 서로 다른 기능의 대안을 갖추는 편이 낫다.

물은 몇 병일까: 같은 ‘하루 3L’도 기준이 다르다

영국 Be Ready는 마시는 물을 1인당 하루 3L씩 사흘분 준비하도록 안내한다. 조리와 씻는 데 쓰는 물은 별도로 더 필요하다고 명시한다. 반면 일본 농림수산성의 하루 약 3L 예시는 음용수와 조리용수를 합친 설명이다. 숫자만 가져오면 사용 범위가 서로 다른 기준을 같다고 착각하기 쉽다. [5] [6]

아래는 영국의 음용수 기준으로만 계산한 예시다. 가족 수×3일×3L를 계산하고, 2L 생수병 단위로 올림했다. 영유아·반려동물·개인별 건강 상태에 따른 추가 수요와 조리·세면·화장실용 물은 포함하지 않았다.

인원

사흘치 음용수 계산

2L 생수병으로 준비하면

1명

1×3×3 = 9L

5병·총 10L

2명

2×3×3 = 18L

9병·총 18L

3명

3×3×3 = 27L

14병·총 28L

4명

4×3×3 = 36L

18병·총 36L

영국의 1인 하루 3L 음용수 기준을 적용한 자체 계산. 개인별 수분 섭취 처방이 아닌 가정 비축량 예시.

4인 가족의 물 36L는 물 자체만 약 36kg이다. 이 숫자는 왜 가정 비축품과 대피가방을 구분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집에 보관할 사흘치 물을 그대로 한 사람이 들고 나가려 하면 이동이 어려워진다. 생수병 개수뿐 아니라 보관 위치와 나누어 운반할 방법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또 가족 수에 따른 표를 개인의 하루 음수량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수분 섭취에 의료적 제한이 있는 사람은 기존 의료진의 지침을 따른다. 비축량 계산은 여러 상황에서 쓸 물을 확보하는 계획이며, 그 물을 모두 마시라는 처방이 아니다.

라면 몇 봉지가 아니라, 실제로 먹을 수 있는 끼니를 센다

비상식량 준비에서 자주 빠지는 조건은 조리다. 물이 없는 상태에서는 끓는 물을 붓는 식품을 먹기 어렵고, 전기가 없다면 전자레인지 사용을 전제로 한 식품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즉석밥이나 레토르트 식품은 제품마다 섭취·가열 방법이 다르므로 포장에 적힌 안내를 읽어야 한다.

영국의 사흘치 식품 안내는 상온 보관이 가능하고 냉장이나 조리가 필요 없는 식품을 우선한다. 통조림, 말린 과일, 견과류 등이 예시다. 가족이 평소 먹는 것을 고르되 알레르기, 씹거나 삼키는 데 필요한 조건, 개봉 도구의 유무도 고려해야 한다. [5]

편집부가 제안하는 간단한 점검법은 ‘조리 없이 한 끼를 차려보기’다. 먹을 주식과 곁들일 식품, 마실 물, 식기까지 꺼내놓는다. 캔이 있지만 따개가 없거나, 가족 중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이 빠졌다면 목록을 고칠 수 있다. 이는 열량과 영양을 계산한 개인별 식단이 아니라 준비의 빈틈을 발견하는 연습이다.

확인할 조건

자기 집에 던질 질문

바로 먹을 수 있는가

전기와 불 없이, 제품 설명대로 먹을 수 있는가

가족이 먹을 수 있는가

알레르기·연령·식사 형태에 맞는가

열고 나누기 쉬운가

따개·수저·가위 등 필요한 도구가 있는가

상온 보관이 가능한가

개봉 전과 개봉 후의 보관 조건이 어떻게 다른가

평소에도 소비할 것인가

기한이 다가올 때 억지로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가

공식 식품 비축 원칙을 실제 구매·보관에 적용하기 위한 편집부 점검 질문.

일본의 ‘롤링 스톡’은 평소 먹는 식품을 조금 넉넉히 두고, 먼저 산 것부터 먹고, 먹은 만큼 다시 채우는 방식이다. 특별한 생존식품을 잔뜩 사서 오래 잊어두는 것보다 일상적인 장보기와 비축을 이어주는 방법이다. [7]

예를 들어 평소 먹는 상온 식품을 앞쪽부터 꺼내 쓰고, 새로 산 것은 뒤에 놓는다. 장을 볼 때는 품목만 확인하지 말고 남은 수량도 본다. 며칠분을 유지할지는 가족의 식사 방식에 맞춰 정하되, 한 번에 큰돈을 쓰기보다 부족한 항목부터 채워도 된다.

냉장고 선반의 달걀과 베리류 옆에 놓인 냉장고 온도계
정전 때는 냉장고 문을 닫아 냉기를 유지하고, 경과 시간과 식품 온도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냉장고 내부 자료사진. · 사진: Getty Images / 미국 CDC 게재 · https://www.cdc.gov/food-safety/foods/keep-food-safe-after-emergency.html

정전 냉장고: 4시간·24시간·48시간의 조건을 같이 읽는다

정전 때 냉장고를 자주 열어 상태를 확인하면 내부의 찬 공기가 빠져나간다. CDC의 보관 안내는 문을 닫아두는 조건을 전제로 한다. 냉장고는 최대 약 4시간, 가득 찬 냉동고는 약 48시간, 절반 정도 찬 냉동고는 약 24시간을 제시한다. [8]

상태

CDC가 안내하는 시간

반드시 함께 볼 조건

냉장고

최대 약 4시간

정전 중 문을 닫아두었을 때

가득 찬 냉동고

약 48시간

정전 중 문을 닫아두었을 때

절반 정도 찬 냉동고

약 24시간

정전 중 문을 닫아두었을 때

자료: CDC, 2025.11.24 갱신. 품목별 안전과 실제 온도를 함께 확인해야 하며 모든 식품의 안전을 시간만으로 보장하지 않음.

CDC는 전기나 얼음 등 냉각 수단 없이 4시간이 지난 냉장고의 육류·생선·우유·달걀·남은 음식 등 부패하기 쉬운 식품을 버리도록 안내한다. 냉동식품은 얼음 결정이 남아 있거나 4℃ 이하를 유지했는지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맛을 조금 봐서 안전한지 판단해서는 안 된다. [8]

따라서 ‘냉장고가 꽉 차 있으니 사흘은 괜찮다’는 계산에는 조건이 붙는다. 냉장·냉동에 의존하는 재료와, 상온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은 따로 세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 차이를 알아두면 정전 직후 무엇을 확인할지도 분명해진다.

물 다음으로 놓치기 쉬운 것, 화장실과 위생

단수가 되면 마실 물만 불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손을 씻는 일이 곧 생활의 문제가 된다. 지진으로 배수관이 손상된 경우에는 물을 구했다고 해서 변기에 흘려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쿄도 방재 안내는 손상된 배수관에서 오수가 역류하거나 새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9]

이 때문에 휴대용 화장실이나 응고제·봉투를 이용하는 제품은 식수와 별도의 준비 항목으로 생각할 가치가 있다. 실제 사용 여부는 건물과 배관 상태,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판단하고, 사용 후 폐기 방법은 제품 설명과 해당 지역 안내를 확인해야 한다. 봉투만 준비해두고 설치·밀봉 방법을 모르는 상태라면 실제 필요할 때 쓰기 어렵다.

가정별로 필요한 위생용품도 달라진다. 영유아가 있으면 기저귀와 처리용 봉투, 월경용품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 평소 사용하는 제품이 필요하다. 손 씻기와 청소에 쓸 물을 생각하다 보면, 앞에서 계산한 음용수만으로 모든 용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물과 식량을 충분히 갖췄다는 만족감 때문에 위생 항목을 뒤로 미루지 않는 편이 좋다. 가족이 사흘 동안 반복할 일상 행동을 떠올리면 필요한 물건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집에 둘 물건과 들고 나갈 생존배낭은 다르게 준비한다

가정 비축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집에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다. 생존배낭은 집을 떠나야 할 때 이동과 초기 대피 생활을 돕는 준비다. 두 준비는 물·식품·약처럼 겹치는 항목이 있지만, 보관할 수 있는 양과 휴대할 수 있는 양이 다르다.

행정안전부 국민안전24의 비상대비 안내는 2~3일분 식수·식량·생필품 등을 준비하고, 생존배낭은 각자가 들고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사람 분량씩 마련하도록 설명한다. 조리 없이 먹는 식품, 라디오와 손전등, 중요서류와 가족 비상연락카드도 안내한다. 이는 비상사태 대비 지침의 한 부분이며, 모든 재난에서 같은 장소로 이동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10]

구분

가정 비축

대피가방

목적

집이 안전한 동안 생활 유지

신속한 이동과 대피 초기 생활

물·식품

가족 수와 비축기간에 맞춰 보관

개인의 이동 능력을 고려해 휴대

연락·정보

라디오·여분 전원·가족 연락 계획

연락카드·휴대전화·보조배터리

개인 필수품

위생용품·복약 및 기기 대비 계획

즉시 필요한 개인 물품을 찾기 쉽게

보관·점검

가족이 위치와 사용 순서를 공유

꺼내기 쉬운 위치, 실제로 메고 이동해보기

국내 생존배낭 지침과 영국의 가정 비축·grab bag 안내를 구분해 재구성. 표의 물품만으로 모든 상황을 충족하는 것은 아님.

가방을 마련했다면 잠깐 메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계단을 이용할 수 있는지, 아이를 돕거나 이동 보조기구를 사용할 때 두 손을 쓸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가족 전체 것을 가장 힘센 한 사람에게 몰아주기’보다 누가 무엇을 가져갈지 미리 나누면 한 사람이 집에 없을 때의 공백도 줄일 수 있다.

실제 위험이 시작된 뒤에 가방을 완벽하게 채우려다 대피를 늦춰서는 안 된다. 미리 준비하는 이유는 필요한 순간에 물건을 고르느라 시간을 쓰지 않기 위해서다.

같은 4인 가족이어도 필요한 준비는 같지 않다

물과 끼니 수는 인원으로 계산할 수 있어도 가족의 필요까지 같은 배수로 계산할 수는 없다. 분유를 먹는 아이, 특정 식품을 먹지 못하는 사람, 냉장 보관 약품이나 전원이 필요한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준비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영유아·고령자·만성질환자·돌봄이 필요한 사람·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위한 식품을 별도로 고려하도록 안내한다. 평소 안전하게 먹던 식품과 필요한 식사 형태를 기준으로 준비해야 한다. [6]

영국의 장애인·돌봄 제공자 안내는 의료기기 사용자가 의료진·돌봄 제공자·장비 공급자와 정전 대응 계획을 미리 정하도록 권한다. 복용약 목록, 보관 위치, 기기 사용 지침, 연락할 사람을 정리하는 것도 포함한다. 일반 보조배터리 하나로 모든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11]

우리 집에서 필요한 질문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전원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의 약이나 장비는 어디에 있는가. 가족이 외출 중이라면 누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가. 약의 보관·복용 방법이나 대체 전원은 임의로 바꾸지 말고 평소 의료진과 공급자에게 확인해둔다.

준비가 어려운 이웃에게 모든 목록을 갖추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연락할 사람을 연결하고, 정보를 종이로 전달하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주변이 알고 있도록 하는 준비도 물품 비축만큼 중요할 수 있다.

식탁에 앉아 서로 대화하는 두 남성
비상시 연락할 사람과 필요한 도움을 평소에 의논해두면 대응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다. 영국 정부 안내에 사용된 자료사진. · 사진: Getty Images / 영국 정부 Be Ready 게재 · https://beready.campaign.gov.uk/be-ready-for-emergencies/

휴대전화가 안 될 때, 어디서 만나고 어디로 갈 것인가

가족 단체채팅방만 있는 상태와, 연락이 안 될 때 만날 장소까지 정해둔 상태는 다르다. 국민안전24는 가족의 비상연락처를 적고 만남의 장소를 정해두도록 안내한다. 종이에 적은 연락처는 휴대전화가 꺼져도 볼 수 있다. [10]

다만 가족의 약속 장소와 재난별 대피소를 하나로 정해버리면 곤란하다. 안전지도는 지진옥외대피소, 민방위대피소,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등을 구분해서 제공한다. 이름이 모두 ‘대피’와 연결돼 있어도 목적은 같지 않다. 집과 직장 주변에서 필요한 시설 유형을 따로 확인해야 한다. [12]

예를 들어 호우로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무조건 가까운 지하공간으로 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국내 호우 행동요령은 건물 안으로 물이 차오르면 높은 곳이나 주변 대피장소로 이동하도록 안내한다. 현재 위치의 위험과 재난문자, 현장 관리자의 지시가 미리 정해둔 약속보다 우선이다. [13]

평소에는 공식 안전지도에서 집 주변 시설을 확인하고, 주소와 이동 경로를 가족에게 공유해둔다. 현장에서 통신이 안 될 수 있으니 중요한 정보를 오프라인에서도 볼 수 있게 준비한다. 표지판과 실제 출입구를 한 번 확인해두면 지도에 찍힌 점을 아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

오늘은 15분, ‘없는 물건’보다 ‘안 되는 일’부터 찾아본다

처음부터 거대한 비상용품 세트를 완성할 필요는 없다. 다음은 앞의 내용을 생활에 옮기기 위해 편집부가 구성한 15분 점검 예시다. 물품 구매를 끝내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집의 빈틈을 찾는 시간이다.

  • 첫 5분: 집에 있는 물과 상온 식품을 꺼내본다. 가족 수에 맞춰 양을 적고,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것과 가열이 필요한 것을 구분한다.

  • 다음 5분: 손전등을 켜고 보조배터리 잔량을 본다. 복약정보·개인 위생용품·화장실 대안을 적는다. 필요한 사람이 즉시 찾을 수 있는 위치인지 살핀다.

  • 마지막 5분: 가족 연락처를 종이에 적고, 연락이 안 될 때의 약속을 정한다. 공식 안전지도에서 대피시설 유형을 확인하고, 다음 장보기 때 보충할 항목 세 개만 골라 적는다.

이 점검을 하면 “라면은 많은데 바로 먹을 식품이 없다”, “손전등은 있는데 맞는 건전지가 없다”, “가족의 약 이름을 한 사람만 안다”처럼 구체적인 문제가 나온다. 추상적인 불안은 해결하기 어렵지만, 이런 빈틈은 하나씩 채울 수 있다.

3일치 식량을 준비한다는 것은 사흘 동안 세상과 단절돼 혼자 버티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생활의 의존 관계를 알아보고, 서비스가 멈췄을 때 우리 집이 바로 어려워지는 지점을 줄이는 일이다. 물 몇 병과 식품 몇 개, 작동하는 손전등, 서로 확인하기로 한 약속에서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


참고자료와 원문

  1. 영국 내각부 · Households encouraged to take small, simple steps to stay prepared in an emergency2026.10.22 · Be Ready 캠페인의 발표일과 목적

  2. 영국 의회 · Be Ready 캠페인 관련 정부 서면 성명2026.10.22 · 사흘 자립 권고의 취지와 공공 대응·취약계층 지원

  3.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 EU preparedness union strategy2025.03 발표·2026.10.29 확인 · 최소 72시간 자립 지침 추진. 개인 비축만이 아닌 다층적 대비 전략

  4. 일본 농림수산성 · 家庭での備蓄상시 안내·2026.10.29 확인 · 최소 3일·가능하면 1주일 비축, 과거 라이프라인 복구 지연 사례

  5. 영국 정부 Be Ready · Be ready for emergencies2026.10.29 확인 · 음용수 하루 1인 3L, 식량·생활용품·연락 계획. 영국 제도를 한국 제도로 소개하지 않음

  6. 일본 농림수산성 · 災害時のために、備えていますか?상시 안내·2026.10.29 확인 · 물 약 3L의 범위는 음용수와 조리용수. 가족별 식품 준비

  7. 일본 농림수산성 · 災害時に備えた食品ストックガイド(2)상시 안내·2026.10.29 확인 · 평소 먹는 식품을 순환하는 롤링 스톡

  8.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 · Keep Food Safe After a Disaster or Emergency2025.11.24·2026.10.29 확인 · 문을 닫아둔 냉장·냉동고의 정전 시 보관 기준, 시식으로 안전 판단 금지

  9. 도쿄도 · 東京くらし防災, 화장실 안내 38쪽2026판·2026.10.29 확인 · 배수관 손상과 휴대용 화장실 대비

  10. 행정안전부 국민안전24 · 비상대비 국민행동요령2026.10.29 확인 · 개인별 생존배낭, 가족 비상연락카드. 비상사태 지침의 맥락을 구분

  11. 영국 정부 Be Ready · Advice for disabled persons and carers2026.10.29 확인 · 의료기기·복약정보·지원 인력 등 개인별 대비 계획

  12. 행정안전부 국민안전24 · 안전지도 — 대피시설2026.10.29 확인 · 지진옥외대피소·민방위대피소·임시주거시설 등 유형별 조회

  13. 행정안전부 국민안전24 · 호우 국민행동요령2026.10.29 확인 · 침수 시 대피, 손전등 사용, 전기시설 접촉 주의

  14.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 · What to Do to Protect Yourself During a Power Outage2026.10.29 확인 · 전기·수도·냉난방·조명 등 정전 시 복합 위험과 배터리 조명